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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ebs 역사강연 보고 실망해서 쓰는글

츠피스2018.10.06 12:44조회 수 2365추천 수 5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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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방송한 질문있는 특강쇼 송호정 교수 편을 보고 쓴 글입니다.

※에타에 올렸던 글을 수정해 올립니다. 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해당 강연은 고조선,단군조선(강연자 송호정 교수가 사용한 용어입니다. 제 글에선 두 표현을 혼용합니다)에 관한 논쟁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송 교수는 단군조선이 신화냐 역사냐는 논쟁에서 단군을 신화라 주장하는 쪽이었습니다. 단군 신화는  단군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 내용 중 일부를 통해 국가 출현 과정을 해석케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고조선 건국에 관한 기록이 있지만(후술) 그에 대해 연연하지 말라더군요. <사기> 등을 통해 고조선의 실질적 건국 연도를 최대한 높게 가정하면 기원전 1000년이라면서요.

 

그러는 한편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문명(후술)과 고조선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습니다. 요하 문명은 중국이 동북공정 중 요하 서쪽에서 발견한 우하량 유적 등을 황제문명 이라 하여 자신들의 역사로 넣은 것이라 합니다. 송 교수는 중국 원류의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 역사와의 연관짓는 것을 부정했는데요, 유적은 있으나 문헌이 없어 설명이 불가하다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또 요하 문명 자체를 문명으로 보는데도 회의적이었는데 당시의 신석기 유적을 '발달한 사회체계나 지배 체제가 갖춰진' 문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국가의 성립 요건을 언급하면서 청동기, 철기 등의 금속기를 갖춘 이후부터를 인정하는 듯 말하더라고요. 잉카 문명만 해도 문자 없이 대제국을 이루었고 송 교수 본인도 강연에서 금속기 이전의 다른 문명들을 인정했으면서도 정작 본인이 논쟁하고 있는 분야에서만 회피하는 듯했급니다.

 

결국 단군 '신화'의 의의는 우리의 시조로서, 민족의 구심점으로서 상징적인 데만 있다가 결론이었습니다.

 

저는 강연을 다 듣고 나서 영 찜찜하더라구요. 우선 기존에 알고 있던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1000년이나 줄이는 그의 해석이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결론에서 단군이라는 민족 지배자가 나왔온 것은 맞다 인정했는데, 그렇다면은 본인이 말한 국가 성립요건 중 '왕' 이 나왔다는 거거든요. 뭔가 모순이 느껴집니다. 

또한 여기서 처음으로 요하 문명을 접했는데, 우리 역사와의 연관점을 면밀히 검토하기보다는 시차가 엄청난데 관련이 있겠느냐며 무관계하다고 단정짓는 듯한 모습이 안일해 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연구해서 결론을 내기보단 이미 결론을 정해 두고 살펴본 느낌이라 할까요? 저명한 교수의 강연이라지만 왜인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4일자 방송 이전 회차를 찾아봤더니 정확히 반대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단군은 역사일 가능성이 높다 주장하는 쪽이었습니다.

 

반대파의 강연을 맡은 우실하 교수의 주장은 신화도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단 것입니다. 그는 요하 문명의 앞으로의 발굴 가능성을 통해 요하 문명에 대한 섣불리 결론짓는 것이 이름을 시사하고 2015년 발견된 도사유적을 통해 신화인 줄 알았던 기록이 역사로 증명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풀어서 쓰자면 요하 문명의 발굴지는 현재 사막인데 본디 문명 번성에 유리한 기후였다고 합니다. 즉 지금 발굴된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발굴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앞서 송 교수의 강연에서 요하 문명을 상세히 살펴보지 않는 점을 제가 비판했는데, 우 교수의 경우 요하 문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하며 요하 문명이 '발달한 사회체계나 지배 체제가 갖춰진' 상태에 이르렀다고 설명합니다. 요하 문명 중 하나인 홍산 문명의 경우 제단과 여신상을 제작할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리고 이 요하 문명과 황하 문명을 시대 흐름에 따라 비교합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도사유적에 대해서도 나오는데요, 도사 문명의 발굴을 통해 과거에는 기록으로, 신화로만 내려오던 요순 시대가 실존했음을 밝혔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요순시대 즈음(50년 후라 기술됨)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하는데, 중국 학계에서는 당시 요하 지방에 고대 국가가 존재했음을 알아냈으나 그 국가의 정체에 대해서는 짚어내지 못합니다. 그 국가가 고조선일 가능성이 높다 고 우 교수는 주장합니다. 비파형 동검을 통해 공식적으로 고조선의 범위를 파악하는데 이 비파형 동검이 현재 하가점 상층문화 에서까지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각 주장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짚어 봤습니다. 송호정 교수의 주장은 상식적인 사건의 전개에 치중을 두었다면 우실하 교수 쪽에서는 최근 발굴된 유적(과 문명)들을 토대로 새로운 역사에 대해, 그 가능성에 대해 논합니다. 요하 문명은 상당히 발달한 동아시아의 시원 문명이며 이를 바탕으로 단군 신화가 그저 이데올로기나 허구라기보단 고조선 건국 이전 상황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줌을 이야기합니다.

 

앞서 송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펴면서 객관적•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한 해석과 상식적인 해석을 강조하고 문헌을 통한 해석을 중시했습니다. 역사를 바르게 연구하기 위해 물론 필요한 방식이나, 그로 인해 새로운 유적과 문화에 대한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혹은 배제당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송 교수는 요하 문명을 중국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해서 우리까지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를 경계하라 는 식으로 마지막에 경고에 가까운 충고를 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중국은 자국의 역사를 지키는 것을 넘어 개척해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민족주의에 빠지기는커녕 자신이 가진 역사와 연구할 가치가 있는 유적에 대해서도 안일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입안이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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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2333년은 한반도 신석기시대에 해당합니다.
    국사교과서에서 말하는 고조선 영역의 지표인 비파형동검, 미송리식토기는 천몆백년이후에나 등장하며 말씀하신 하가점상층의 비파형동검은 B.C8~9정도로 편년되고있습니다
    백제 왕흥사건립년도의 예(삼국사기엔 600년에 착공하여 634년에 완공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발굴조사결과 577년으로 기록되어있음)처럼 역사서에 기록된 연도를 맹목적으로 신용할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치렐루야
    비파형동검, 청동기 사용으로 국가가 있었다고하는 건 넌센스 아닐까 싶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마야나 아즈텍 같은 경우 금속을 안썼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제단들, 옥으로 만든 정교한 장신구들은 국가단위로 분업이 있었음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양보해서 금속사용을 국가단위로 본다고쳐도 청동기는 하가점 하층문화 기원전2000년에 나온걸 알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도는 저도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 역법의 오차, 기록상의 오류로 차이가 생기는 것으로 봐야지 반증없이 아예 거짓말로 치부할 필요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 첨언 더하면 중국은 우하량문화부터 고국이라해서 그때부터 국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세금쟁이
    저는 글쓴이께서 본문에 적으신 '비파형 동검을 통해 공식적으로 고조선의 범위를 파악하는데 이 비파형 동검이 현재 하가점 상층문화 에서까지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와 같이 하가점상층문화를 예로 고조선상한연대를 올려보려는 시각을 비판한거지 청동기사용을 기준으로 국가단계의 획기를 짓는다는 발언은 한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금쟁이님이 언급하신 하가점하층문화의 절대연대는 대략 4,000B.P~3500B.P(B.C2.000~1500)로 B.C13세기~9세기에 해당하는 하가점 상층문화와는 두문화층간 연대적 공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가점하층의 청동기는 귀걸이, 반지 등 소형장식품만이 일부존재하며 '소위' 고조선의 상징이라 불리는 비파형동검은 하가점상층문화 후기(B.C9세기정도)의 남산근유형에 이르러서야 확인되기 시작(이마저도 중국 청동예기들과 공반하기는 합니다만)합니다.
    결론적으로 두문화의 연결공백도 있을뿐더러 하가점하층문화의 소형청동장신구를 고조선과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문화적 특성이 가장 잘표현되는 토기를 살펴보아도 하가점상하층문화의 토기는 삼족기라해서 3개의 다리가 달린토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이러한 토기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토기문화권과는 엄연히 '문화적 성격'이 다른 토기입니다.
    송호정교수님의 강연을 보진 않았지만 송교수님께서 '올려봐야B.C1000년 정도'로 고조선시작의 상한을 정하신건 고조선을 비정할 수 있는 [물질적증거]가 나타나는 상한이 B.C9세기정도인 현 상황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추측되어집니다.
    B.C2333이란연대도 기록상의 오류로 차이가생긴정도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이 시기 한반도는 신석기시대후기에 해댱하며 과학적증거로 보아도 B.C2333년과 일치하는 탄소연대는 율리식토기단계(한반도 신석기시대마지막단계)에 해당합니다.
    금속사용유무를 떠나 '단군'이란 수장 및 상위계층이 등장한 증거가 주거지상으로든 유물상으로든 일절나타나지않는데 세금쟁이님께선 무엇을 근거로 위와같은 생각을 하시는지 이해가되지않습니다.
  • 첨언하신 '중국은 우하량문화부터 고국이라해서 그때부터 국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내용은 굳이 논리로 반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국가단계의 시작을 높게본다고해서 우리가 거기에 동조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객관적으로 중국은 국가단계의 출현이 빠르다고 인정되고 있는것이 세계사적 통념입니다.
  • @치렐루야
    잠시 끼겠습니다... 지난주 우실하교수 강의를 바탕으로 말씀드립니다.

    1. 치렐루야님은 '단군조선의 물질적증거 상한이 기원전 9세기정도라고 하셨는데요.' 비파형동검의 발견 연대가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작년 심양에서 발견된 기원전 18~11세기의 비파형동검이 발견되었구요. 이미 90년대에 평양에서 기원전 25세기 비파형창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나라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고있죠. 그런데 조작의 증거는 없습니다.

    2. 꼭 청동기만이 단군조선을 증명할수있는건 아닙니다. 하가점하층에서 '치(돌출부)가 있는 석성'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구려가 수,당과 싸우면서도 700년동안 단일국가를 유지할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런데 중원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동시대의 신화인줄 알았던 요순시대가 실제역사로 입증되고있죠. 도사유적이 발견되면서요. 그래서 중국 역사학자 소병기, 설지강은 "기원전 2300년에 요서일대에 문명대국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중국에서는 그 시대를 비정할 국가가 없어서 그냥 문명대국이라고 하지만, 정말 대국이 있었다면, 우리는 고조선이라고 볼수 있는거죠. 더욱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구요.

    3. 강의엔 나오지 않지만, 고인돌이 있죠. 한반도 고인돌의 방사능탄소 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2천년 이전으로 나옵니다. 고인돌에 사용된 판석의 무게는 작게는 10톤에서 많게는 300톤인데, 이 거대한 판석을 옮기려면 수백명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히 조직화된 사회를 전제로 합니다.

    "금속사용유무를 떠나 '단군'이란 수장 및 상위계층이 등장한 증거가 주거지상으로든 유물상으로든 일절나타나지않는데" 라는 치렐루야님의 말에대한 이상 저의 의견이었습니다.
  • @하늘바람별
    하늘바람별님께서 3가지 논리로 비판을 해주셨네요 저 또한 순서대로 반박을 해보겠습니다.

    1. 심양에서 발견된 기원전18~11세기의 동검?

    심양에서 발견된 기원전18~11세기의 동검 다시말해 700~800여년이라는 기간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고고학에서 단일유물의 연대를 비정할때 수백년의 오차폭을 가졌다고 편년하는 학자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이러한 연대가 탄소연대측정에 의해 얻어졌다고 해도 100년단위 오차폭도 논란이 많은 상황에, 하물며 700여년이라는 큰 오차폭이 측정되면 통상 연대비정의 대상시료가 '오염'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90년대에 평양에서 발굴된 비파형동모(창끝)을 예로드셨는데, 비파형동모는 비파형동검에서 파생되어나온 것으로 위와같은 주장은 비파형동검이 B.C25세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B.C25세기의 근거 또한 전혀 제시하지않으셨습니다.
    90년대 북한의 경우 정치·경제적실패를 무마시키기위해 민족주의적 사업을 한창진행시키던 상황(대표적인예로 94년도에 평양에 단군릉을 만든다던지-_-;;)이었습니다. 조작의 증거가없다?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2.하가점하층의 '치'와 고구려?

    앞서 말했다시피 하가점하층의 존속연대는 B.C2000~1500(4,000B.P~3500B.P)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치'가 2000여년 이후 수당전쟁 시기의 고구려와 무슨상관이있는지, 왜 연결시키는지 전혀 근거가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예로 환단고기사학자들이 홍산문화의 적석총과 고구려의 적석총을 연결시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두 적석총은 이름만 같을뿐이지 무덤구조(고구려=지상식/홍산문화=지하식)나 적석의 형태, 부장유물또한 전혀 관련이 없는 이질적인 문화입니다. '2000여년'이라는 시간폭과 공백기간에서 이미 논박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지만 '만번양보'해서 연대폭을 배제하더라도 두 묘제는 구조적으로나 부장유물로나 전혀 접점이 없습니다.

    3. 고인돌의 탄소연대?

    탄소연대측정법은 대기중에 함유된 탄소중 C14라는 원소가 대략5730년을 주기로 반감기를 가지는 것에 착안하여 고안해낸 연대측정법입니다. 생물은 호흡 혹은 광합성을 하며 대기중의 탄소를 교환하고 사망과 동시에 탄소교환이 중지되면서 체내의 C14가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후대의 우리는 출토된 유기물(특히 동식물유체)로 해당 유구와 유적의 연대측정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무기물'인 고인돌에서 탄소연대를 측정했다? 무슨 어불성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광합성하는 암석이 존재한다는건 지식이 짧은 저로써는 들어본적이 없네요(혹시 아시는분이 계시다면 정정하겠습니다). 고인돌에 수착된 유기물이 존재(고인돌위에 제사를 위해 음식을 올려놓는다던지)했었다 하더라도 외부에 노출되어있는 고인돌의 유기물이 수백 수천년동안 비,바람등을 견디면서 잔존해있을 가능성은 단언컨대 0에 가깝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늘바람별님이 근거로 제시한 1,2,3모두 타당성없는 근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치렐루야
    1. 오차가 아무리 커도 적어도 기원전 10세기이전임은 분명하네요. 그리고 BCE25세기의 비파형창끝의 증거를 제가 제시하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BCE 25세기 이전의 것으로 검증된 평양 상원군 용곡리 고인돌 무덤에서 비파형창끝과 청동단추가 출토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저에게 제시하라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역사학계에서 확인해봐야할 부분인데 무관심으로 일관 혹은 조작되었다고 단정해버리죠. 그래서 남한에는 자료가 거의없는거같고요. 북한의 정치적 상황을 보아 조작될 가능성이 높다는건 추측일 뿐이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2. 하가점하층에서 나온 치가있는 석성의 핵심은 고구려때 까지만해도 "중원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양식이라는 겁니다. 위에서 말했다싶이 중국학자들도 그 시기에 요서지역에서 분명히 문명대국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시대 그 지역에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은 고조선밖에 없습니다. 이것으로 고조선 연대를 아직 확증할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거죠.
    그리고 홍산문화와 고구려 적석총이 양식이 아예 다르다니요. 적석총은 말그대로 돌을 쌓는 형식의 무덤이지 지하식이냐 지상식이냐의 구분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적석총들이 있을 뿐이죠. 가장 원시적인것은 땅을 파서 시신을 묻고 위에 돌을 쌓은 토광묘(지하식), 그리고 아래 석관을 놓고 돌을 쌓은 석관적석묘(지상식)도 있습니다. 홍산유적에서는 지하식인 토광묘와 지상식인 석관적석묘 모두 출토되었구요. 특히 홍산유적의 피라밋 적석총은 고구려, 백제 적석총과 놀랍도록 흡사합니다. 적석총은 우리나라 주요 고대국가들에서 대부분 출토가 되고있는데 "황하문명에는 없는" 양식입니다.

    3. 네 당연히 고인'돌'을 탄소측정한것은 아니겠죠. 주로 고인돌 내부의 석관, 무덤방에 남아있는 목탄으로 측정합니다.

    위의 근거들은 단군조선의 존재, 연대를 추정할수있는 유물일 뿐이지 있다 없다 어느쪽으로 확정할수 있는건 아닙니다. 아직 연구가 충분히 되지 못했으니까요(안하는 부분이 크고요.) 그런데 모두 타당성이 없다고 단정하시는건 굉장히 오만하신거 같네요.

    원점으로 돌아가보면, 이 논쟁이 시작된 출발점부터 잘못되었습니다. '글쓴이가 하가점 상층의 비파형동검(BCE8~9세기)으로 송호정교수의 BCE천년설을 반박하는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거 같은데요. 우선 이 글은 글쓴이의 주장이 아니라 EBS 송호정, 우실하 교수 강의배틀을 보고 정리한거고요. 우실하교수는 하가점상층 비파형동검으로 고조선연대를 올려본게 아닙니다. 고조선연대를 올려볼수있는 근거는 저도 일부 말씀을 드렸고 강의에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글쓴이가 헷갈리게 혹은 잘못쓴거같네요.
    반박을 하고 싶으시다면 두 교수의 강의를 보고 오시는걸 추천드립니다.
  • @하늘바람별
    우선 부족한 의견에 일일이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열하신 내용에 대한 반박을 시작하기 전에 하늘바람별님이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저를 포함한 타인이 맹목적으로 비난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또한 본문의 주제인 강의내용도 배제하겠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굳이 강의를 안봐도 하늘바람별님의 주장(서술하신 근거)을 반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내용은 관련전공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입니다.

    1. 앞선 댓글에서 설명드렸다시피 단일유물에 수백년의 오차폭을 부여하는 고고학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예를들어 어떤유적에서 토기가 하나 출토되었을때 발굴조사자가 '이 토기는 B.C3세기~A.D3세기(=약 600년의 기간 어느시점에 제작된것으로 추정)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보고서에 게재했다고 가정합시다. 이 말은 즉슨 "초기철기~원삼국시대에 만든 것 같은데 언제인지 모르겠당ㅋ;;"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따위로 편년하는 학자는 이미 본질에 접근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만약 제시해주신 연대가 절대연대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700년의 오차폭은 고고학계에서 시료가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고 [폐기(학문적인 측면에서 배제한다는 말입니다)]합니다.
    단일유물의 B.C18세기~11세기라는 연대비정은 해당유물이 적어도 10세기 이후를 반증한다는 말이 아니라 고고자료로써 이미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북한자료의 신뢰성문제입니다. 북한은 본래 남한보다 고고학의 시작과 발전이 훨씬 앞섰습니다. 고고학자체가 공산주의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바탕으로 하니까요.. 한편 북한의 대표적인 학자로 도유호를 들 수 있는데, 아직도 신석기시대전공자들은 한반도 서북부지역토기편년에 60년대에 발표된 도유호의 편년안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7080년대 주체사상이니 천리마운동이니 김일성이 독재체제를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도유호를 포함한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숙청을 당합니다(짱깨들 문화대혁명같은 만행을 저지른것이죠). 이때부터 북한고고학계는 내리막을 타게된 것은 물론 농경이 평양에서 시작됐다(소위 대동강문명론)는 등 낭설을 내뱉는 사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말씀하신 평양 용곡리유적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80년대 발굴조사된 당시엔 구석기~신석기시대로 보고된 유적인데 언급하신 내용은 공교롭게도 94년도(왕검릉만든시기)에 발굴조사를 통해 보고된 내용이네요. 북한고고학계를 싸잡아 매도할수는 없겠지만 이 당시 북한에서 제시한 절대연대(지석묘와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자체를 부정하는 뜻이 아닙니다.)를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자료말고 좀 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시는 편이 하늘바람별님의 주장에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고학에선 어떠한 현상이 '일반적'으로 나타날때 그것을 인정하고 '시대적획기'나 '문화'를 비정합니다. 정말 만약에 절대연대상으로 B.C25세기라는 연대가 조작되었지 않았더라도 단일개체로 고고학적 의미를 부여하진 않습니다. 그것이 특정시기, 특정지역에 일반적으로 나타날때(다수가 확인될때) 고고학적해석을 하는 것이지 단일개체는 앞서말했다시피 '시료의 오염'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배제까진 아니더라도 '한번 고려'하는 수준에 그칩니다.

    2. 소병기는 홍산문화를 고국-방국-제국 이론에 근거하여 홍산문화를 고국(古國)단계에 비정시켜 자기들역사에 편입시키려 했습니다(황제문명론). 이러한 시각은 다민족국가론에 뿌리를 둔 끼워맞추기씩 해석이며 저 또한 신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고조선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윗 댓글에서 하늘바람별님은 '그 시대 그 지역에 나라가 있었다는 기록은 고조선밖에 없습니다.'라고 언급하셨습니다. 홍산문화의 절대연대는 6500B.P~5000B.P(B.C4500~3000년)입니다. 논박할 가치가없습니다. B.C2333년이라는 건국연대도 고고학계는 말할것도 없고 사학계의 주류학자들도 부정적인 시각인데 B.C4500설은 어디서 출처한 기록인지 묻고싶습니다.
    (환단고기 혹은 환단고기관련서적은 언급도하지마십쇼..만약 이러한 내용으로 반박하신다면 더이상 댓글달지않겠습니다.)

    고구려 적석총과 치도 할말이 없습니다. 윗댓글에서 제가 착각하고 2000년의 공백이라고 했는데 최소 3000년의 공백입니다. 알기쉽게 말하자면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폭입니다. 고인돌만들던 시절부터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거쳐 하늘바람별님과 제가 인터넷으로 논쟁을 펼치고있는 지금현재까지의 기간동안의 공백이란말입니다. 홍산문화사람들과 고구려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한 마음'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있었다면,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홍산문화와 고구려 적석총이 양식이 아예 다르다니요. 적석총은 말그대로 돌을 쌓는 형식의 무덤이지 지하식이냐 지상식이냐의 구분은 해당되지 않습니다."이같은 말씀은 고고학적 지식이 전혀없는 하늘바람별님의 '學識'을 보여주는 언행입니다.
    홍산문화 적석총의 매장주체부는 지하에 계단식으로 조영되었고 고구려 적석총은 매장주체부가 지상에 위치해있는 [석실묘]인것은 물론 궁륭식천정(국사책에서는 모줄임구조하고 합니다.)을 가진 묘제입니다. 세부적인 요소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둘다 돌을 쌓아만든 적석총이기 때문에 관련성이 있다면 이왕 '열린시각'으로 보시는거 이집트 피라미드와 고구려의 관련성에 대해 조사해보시는 방향도 추천드립니다.

    3. B.C2000년대에 조영되었다고 말씀하시는 '한반도고인돌' 유적명을 알려주십시오 제가 직접 보고서를 찾아보겠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학계가 뒤집어질 일인데 제가 공부가 짧은지 들어본적이 없네요.

    반박문을 쓰다보니 감정에 휩쓸려 자극적인표현이 많았네요. 이해를 도와드리고자 적절치 못한예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하였다시피 결국 무엇을 믿든 하늘바람별님 자유입니다. 이 댓글의 목적은 하늘바람별님이 제시해주신 근거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함입니다.
    어쨋거나 고조선을 전공하는것도 아닌데 없는 지식 짜내고 관련자료 찾아보면서 공부많이 한 것 같습니다. 문미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치렐루야
    저는 홍산에서 나오는 하가점 상하층 뿐만 아니라 우하량 유적등 광의의 홍산문화에서 나오는 모든 유물유적들이 우리민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이고 더 밝혀져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하나씩 나열해보겠습니다.

    1. 우하량 유적 같은 경우는 흔히 신석기로 분류합니다. 치렐루야 님은 주거지 및 유물상으로 상위 계층 것이 나온 것이 없다고 했는데, 저는 주거지 같은 경우는 발견이 되지 않은 거라고 봅니다. 우실하교수님 저 강의만 봐도 저 위쪽 사막에 더 크고 많은 것들이 묻혀있을 것이라고 했죠., 제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하량 유적의 그 거대한 제단, 무덤을 부족사회 규모로 어떻게 쌓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우하량 박물관에 설명을 보면 이 때 "唯一獨存"사상이 이미 나와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피라미드식 계급사회가 아니면 전 그런 거대유적을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나오는 많은 옥기는 이미 분업사회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생각이 아니라 이형구 박사님 생각이지만요. 사실 돌갈아서 물건만들던 시대인데 옥으로 용만들고 곡옥 만들고 하는게 분업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형구박사님은 옥장신구 하나 만드는데 한사람이 최소 15일에서 30일이 걸린다고 보더라구요. 국가단위의 조직시스템이 없으면 이를 어떻게 만드냐는 거에요.

    2. 비파형 동검은 하가점상층에서 발견되어서 거기서부터 고조선이랑 관련있다고 이야기 하셨는데, 비파형 동검은 아니지만 똑같은 형태의 비파형 옥검이 우햐랑같은데서 많이 발견되요. 재질만 다르지 검을 만드는 형태는 계승한 정도가 아니라 배꼈다 싶을정도로 똑같은걸 한눈에 볼수 있을 것입니다.
    복기대 교수님 같은 분은 하가점 상층이랑 하가점 하층의 공백은 중간에 위영자로 옮겨가서 다시 상층 있는데로 돌아오는 것으로 설명하더라구요.

    3. 홍산지역에서 출토되는 곡옥같은 경우 한반도에 곡옥과 그 형태가 유사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영향받은 것으로 보고 있구요.

    4. 우하량에 곰 토템은 삼국유사 단군신화에 곰 토템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5. 그 지역에 옥들의 출처가 압록강 바로 위에 수암에서 왔습니다. 수암옥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우하량에서 출토된 여신상에 이빨은 가리비같은 조개에 한 종류 껍데기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조개 이름이 기억이 안나서, 그런데 이 이빨부분은 심양박물관 설명에 그렇게 써 있었습니다.)
    우하량 유적의 주인이 압록강과 바로 밑에 발해만까지 지배를 했는 증거라고 말은 안하겠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넓은 지역끼리 충분히 교류를 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이유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기원전 2333년 전 유물 없는 걸로 고조선이 없다고 하셨는데 , 왜 고조선의 흔적을 한반도에서 찾는 지부터 편견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홍산문명 있는 곳에서 한반도로 내려올 수 도 있는 문제 아닌가요? 한반도에 기원전 2333년된 청동기 유물이 안나온다는 걸로는 고조선이 거짓이다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에 청동기 유물이 비씨 10세기에 한정된다고 생각은 안합니다. 한반도내 청동기 연대는 계속 올라가고 있고, 발견이 안되서 그렇지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기도 양수리와 북한에 평양상원군에서는 비씨 2000년대 청동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 (물론 평양 상원군 청동기는 북한 빨갱이들이 발견한거라고 인정안하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그런데 정작 주작했다는 증거는 딱히 없고. 그리고 낙랑현별호구부 그런건 발견하면 대뜸 "이건 진짜다!"하고 잘 믿더라구요.)

    말이 좀 중구난방이죠? ㅎ 그냥 생각나는데로 막 써서 그런거니 이해부탁드립니다.
  • @(진)세무사
    흠...어디서부터 반박해야할지 난해하지만 감히 끄적여 보겠습니다.

    1. '옥기'라는 상징물을 만드는 전문공인집단의 존재와 제단, 대규모묘제 등은 단순한 부족사회의 구성원과 조직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어떻게 고조선과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토기의 예만 봐도 홍산문화에서는 채색토기가 출토되는데 '채도'라는 요소자체도 동북아시아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 중국의 앙소문화에서 기원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는 것이 정설입니다(요동반도에 채도가 등장하는 것도 홍산문화시기 한참 이후이기 때문에 요서의 홍산문화와 요하 이동[요하강 동쪽]과의 관련성 또한 극히 떨어집니다.).

    2. 비파형옥검?

    말씀하신 비파형옥검(저로써는 처음듣는 자료..)에 대한 자료를찾아보니 관련 논문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컴퓨터 그래픽으로 조잡하게 복원된 사진하나만 구글이미지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사실이라면 고조선의 상한과 정체성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논문이 하나도 없다? 감히 추측하자면 극단적인 민족주의사학자들이 조작한 내용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비파형동검은 현재로썬 하가점상층문화의 남산근유형의 곡인검에서 기원을 찾는것이 타당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이미지를 못올려서 구글에 남산근유형을 검색하시면 관련된 "실물"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3. 홍산지역의 곡옥

    말씀하신 곡옥이 결상이식의 형태를 가진 옥기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형태는 이역만리 떨어진 마야문명에서도 확인됩니다(시기상으로나 지역상으로나 당연히 연관없습니다 -_-;;;). 즉 광범위한 지역에 오랜시기동안 나타나는 형태로 이와 같은 논리라면 마야문명도 고조선과 관련있는지 묻고싶습니다.
    적절하진 않지만 위와 같은 논리로는 유럽과 동아시아 모두 숟가락이 존재하니 모두 뿌리가 같은 범지구적 공동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4. 우하량유적의 곰 토템

    중국에서 말하는 '옥웅룡(환단고기사학자들이 홍산문화와 고조선을 연관시키려 언급하는 주된 유물...)'을 근거로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옥웅룡이 처음 출토되었을 당시 중국에선 '옥저룡(돼지용)'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후에 옥웅룡이라 정정하였고요. 이처럼 사람마다 특정 형태를 접했을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모두 다릅니다. 돼지인지 곰인지(혹은 다른 동물인지)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 추상적인 주관을 바탕으로 곰토템을 유추하고 '단군왕검 신화'의 곰토템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옥웅룡의 모델이 설령 곰이 맞다고 하더라도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문화상과 홍산문화의 문화상은 상이한 내용을 보이고 있습니다(앞선 댓글들에서 언급하였습니다).

    5. 홍산문화 발굴보고서?(도록일수도 있습니다.)를 보면 옥기에 사용된 원석은 투섬석 연옥, 사문암(담록색이나 심록색) 및 활석류라 보고되고 있습니다. 지질학적지식이 없어 이 중 어느것이 수암옥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같이 근거로 제시하신 조개껍데기의 예처럼 '교류'의 결과물로 인식하는 것은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그것으로 압록강일대가 홍산문화의 영향력아래 놓였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번도 청동유물로 고조선의 상한을 비정한다고는 안했습니다. 본문의 글쓴이께서 하가점상층의 비파형동검(B.C9~8세기에 해당)의 예로 송호정교수의 B.C천년설?을 반박(오히려 송호정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입니다...)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않기 때문에 비판을 한 것입니다.
    청동기시대의 연대가 올라가는 것 또한 동의합니다. 한반도에서 청동기는 청동기시대 전기후반에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최근 정선 아우라지유적에서 청동기시대 조기의 대표적인 토기인 돌대문토기와 작은 청동기조각이 함께 출토되면서(층위교란문제는 일단 배제하겠습니다)한반도 청동기등장의 시기문제 또한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주목받았고요.
    하지만 북한학자들이 주장하는 B.C25세기니 2000년대 청동기니 하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지 묻고싶습니다. 이것이 탄소연대에 근거한 것인지 그렇다면 추출한 시료와 측정내용은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상대편년이라면 어떤유물과 공반한 것인지 등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동의하겠습니다.
    한편 "홍산문명 있는 곳에서 한반도로 내려올 수 도 있는 문제 아닌가요?"와 같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근거입니다. 앞서 제가 반박한 내용뿐만아니라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훨씬 많지만, 제 역량부족으로 인해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만 단순히 열거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댓글을 비판하시는 분들께서 제시한 근거는 객관적인 사실이 하나도 없습니다.
    위에서 제시해주신 뜬구름잡기식의 논리적접근은 막말로 '사이비사학자'로 비판받는 그분들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공격적으로 들리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증거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접근해야할 분야입니다.
    민족주의적사고가 바탕에 깔린 역사해석은 중국의 동북공정(허무맹랑한 주장...)과 별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치렐루야
    판이 점점 너무 커져서 어디부터 이야기할지 잘 모르겠네요;;/
    우선 마지막 이야기부터 답변드리면 저한테 유사니 역사니 하는건 크게 상관없습니다. 첫 댓글에서 밝혔다시피 저는 제 생각이라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제 개인 주관도 많이 들어감을 미리 밝힐려고 이야기 한거에요. 저는 학사도 아니고, 역사전공도 아니고, 제 말에 크게 책임질게 없는 사람 입니다. 그러니 제가 잘못말한거나 틀린거 있으면 그냥 까이는 수 밖에 ㅎ
    단, 학자들한테 유사 사이비라고 말은 조금 거슬렸습니다. 작년이였나 서울대 한영우 교수의 다시찾는 우리역사에 한영우 교수는 홍산문화가 우리민족의 원류고, 심지어 상나라 문화도 동이족, 아사달족이 주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물들에게는 함부로 사이비/유사학자라고 말하는걸 들어본 적이 없네요.

    홍산문화가 우리민족과 유사성이 밝혀진게 완전히 없다.라는 말까지는 동의합니다. 전공하거나 학자들은 말을 조심해야하기때문에 다 이해하는 바입니다.
    단지 홍산문명은 크지도 않았고, 또 우리민족과 관련이 없다! 라고 단정짓는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과 관련없으면 중국과 관련있는지 아니면 전혀 관계없는 유물유적인데 제 3자가 주인인지 정확하게 이야기도 못하면서 "우리민족과는 관련이 없다!"라고 단언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연구된것도 얼마안됬고, 얼마나 땅에 더 묻혀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문제인데 말이죠.

    그래도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글을 쓰시는거는 참 읽기 좋았습니다. 덕분에 몰랐던것도 새로이 안것도 많았구요. 한 번은 직접 만나서 차한잔하면서 차분히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 생각도 합니다. ㅎ 시간되시면 쪽지주십시오 ㅎ

    1. 비파형 옥검부터 말하면, 사실 이건 책에서 본 내용인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안나고 출처도 잘 모르겠네요 """ 우실하교수 아니면 이형구 교수로 기억하는데 비전문가도 아니고 막연히 조작된 사진을 올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건 찾게되면 다음에 다시 언급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2. 사실 북한 비파형 동모는 언급안할려다가 "홧김에 "언급했습니다. ㅎ 저도 사실 빨갱이놈들 거짓말 충분히 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논문이기에 찾을려고 해도 warnig떠서 찾기가 참 힘들드라구요. 대신 시중에 나온 책 중에서 북한 논문을 인용한 것을 이야기 하면
    "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 유적 16호 집터와 평양시 상원군 용곡리의 4 · 5호 고분에서 비파형 창끝이 발견되었는데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측정한 결과4,539+197/-197년 전으로 나타나 이 비파형 동모의 연대가 bc 26세기로 추정된다."
    이때 같이 나온 인골로 추정했다고 합니다.

    조작에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한 것은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못볼수도 있는데, 북한에 이 논문에 대해서 치믈리에 님처럼 "이래서 저래서 잘못됬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라서 믿을 수 없다. 정황증거만 이야기 하기에 그랬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북한이기에 완전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낙랑호구부 나왔을 때는 비판과정도 없이 "그건 진짜다." 단정하더라구요. 북한 연구결과를 받아드릴 거면 다 받아드리고 아니면 아예 배제를 해야지 자신들 입맛에 취사선택하는게 참 보기 그렇더라구요. 아무튼 홧김에 언급한거에요.

    3. 곡옥은 사실 곡옥이라고 쓰려던게 아니라 옥결로 쓰려던 게 기억오류로 잘 못 쓴거에요. 홍륭화, 문암리에 같은시기 비슷한 옥결이 있다. 이를 통해 한반도와 홍산문화가 연관이 있다고 이야기 하려고 한거입니다.
    곡옥은 제가 마야에도 발견된다는걸 처음 듣네요. 한국 일본에서 발견된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건 비판보다도 제가 궁금해서 그러니 관련된 내용 있으면 한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곡옥에대해서 마야에 나온다고해도 이 곡옥이 중국, 인도, 유럽할거없이 전세계에 나오냐고 한번 묻고 싶습니다. 이게 전세계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일본.북방에서 발견되는 문양이고 그걸 예전부터 연관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마야에 조금 예외적으로 나오는 걸 가지고 전세계적으로 공통이다라고 이야기하는건 조금 억지라고 밖에 안보이네요.

    4. 곰토템은 옥웅룡보다도 우하량 여신묘에 곰 턱뼈랑 곰소조를 모신 흔적이 나와서 입니다. 옥저룡이 옥웅룡으로 바뀌게 된 계기도 여신묘에 곰 토템이 발견된 후입니다. 그냥 "어?? 요거 돼지보다 곰이랑 더 비슷한데?"해서 곰으로 바꾼게 아니라 여신묘에 곰토템이 있는걸보고 곰을 모신 종족이구나해서 옥웅룡으로 한거죠.

    적석총이나 성양식등이 2000년간 없다가 고구려때 갑뚝띄하고 형태도 다르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같은 양식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 하셨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때 양식들의 원형을 거기서 못찾을 수도 없는게 중원이나 근처에는 그 비슷한것도 안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의 주인들이 타 세력에 멸족당하지 않았다면 자연이 그 주류가 한반도와 연관이 있을거라고 보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머리굴려도 중간 유물.유적이 나오면 다 끝나는 문제겠지만요.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더 길어질거 같아서 이걸로 줄입니다. 이렇게 토론해서 많이 배우네요.
  • @(진)세무사
    단순 사실만 나열한 제글에 논리가 있다고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위에 하늘바람별님 반박에 답변한다고 힘이 빠져 간단히 몇가지만 반박하겠습니다. (진)세무사님께서 제시하신 근거와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하늘바람별님이 재반박하신내용에 대한 답변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제 닉네임은 치믈리에가아니라 '치렐루야(치킨+할렐루야)'입니다. 치킨전문가의 의미가 포함되어있는 전자와 치킨에 대한 신앙심을 나타내는 후자는 엄연히 다른 맥락의 닉네임입니다ㅎㅎ...크흠,,각설하고,,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귀차니즘으로 인해 강의내용은 굳이 찾아보지 않고 우실하교수에 대해 조사해보았습니다. 항공대 인문자연학부교수, 단군고조선학회회장 등등 짱짱한 커리어를 가진 분임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저명한 학자의 논문을 찾아보고자 검색을 해보니 석박사모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대학원을 수료하셨더군요. 역사학을 '전공'한분은 아니지만 이를 꼬투리잡아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학부생인 제가 교수의 학식에 대해 평가하는것도 말이 안되구요. 다만 세무사님께서 말씀하신것과 같이 "비전문가도아니고"란 말에는 물음표가 생깁니다. 물질자료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고조선 연구(기록이 적기때문)에 있어 고고학, 하물며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회학자'의 말씀은 선뜻 동의하기가 꺼려집니다.

    3. 결상이식이 옥결(중국용어)입니다. 한편, 흥륭와(홍륜화라고 하셨는데 발음상의 차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문화는 요서 서납목륜하(요하강의 지류)일대에 위치했었고 절대연대는 8000B.P~7000B.P(B.C6000~5000년)입니다. 말씀하신 문암리가 강원 철원 문암리인지 경남 하동 문암리인지 함경북도 길주군 문암리 고성 문암리 인지 모르겠으나 앞에 세개는 지석묘유적(청동기시대)이고 고성문암리가 신석기시대유적이네요.(결상이식도 확인되었습니다)
    고성 문암리유적의 주 문화층은 오산리식토기단계(신석기시대 조,전기에 해당하며 우리가 흔히 아는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중기★에 등장합니다.)에 해당합니다. 여기에서 출토된 결상이식을 세무사님께서 고조선으로 비정하시는 '홍산문화'와 연결시켜 보신다면 고조선이 빗살무늬토기단계 이전부터 존재했었다는 말이됩니다. 심지어 흥륭와문화까지 연결시키시면 빗살무늬토기는 커녕 '한반도 신석기시대의 시작'과 함께 고조선이 등장했다는 논리로 보입니다. 적절치 않은 예인거 같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나머지는 앞서언급한것 처럼 하늘바람별님댓글에 대한 반박문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주로 홍산문화와 고조선을 연결시키는 내용에 대한 비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전국고고학대회의 주제가 고조선이었습니다. 고조선을 주제로 전국의 대학교, 박물관 등에 속한 고고학자들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청규(영남대), 정인성(영남대), 김상민(국립중앙박물관), 이형원(한신대 박물관), 강인욱(경희대) 선생님께서 발표도 하셨구요. 그런데 이 중요한 자리에 '거물' 한영우교수님은 종합토론시간에서도 못뵀고 발표자들이 인용한 참고문헌에서도 이름이 안보이시네요...
    어쨋거나 국내학자들도 고조선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위에서 발표한 선생님들 외에 신진학자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비판글을 쓰다보니 감정에 휩쓸려 '사이비'라는 표현을 썻는데 언짢으셨다면 정중히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연구된것도 얼마안됬고, 얼마나 땅에 더 묻혀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문제"라는 말씀은 오히려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려 고뇌를 거듭하는 이분들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요.

    저도 할말많지만 두분을 상대하다보니 지쳤기 때문에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신분도 아닌데 이처럼 풍부한지식을 가지고 계신것과 옳고 그름을 떠나 나름의 논지를 전개해나가시는 모습에 개인적으로 감탄했습니다. 저도 논쟁하면서 배운점이 많은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진)세무사
    아참 제가말했던 결상이식은 '마야문명에서도 보이기 때문에 전세계공통이다'란 논리가 아니고 한종류의 유물로 파도타기식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타당성있는 설득력을 얻기힘들며 이러한 논리로는 전혀 관련없는 지역까지 연결된다는것을 지적하는 뜻에서 말한겁니다.
    고고학적문화가 인정받기위해서는 토기, 석기, 금속기, 주거지, 묘제 등을 포괄하는 전체조합상과 공간성, 시간성이 일련의 규칙을 이룰때 비로소 '문화'로 비정 할수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선후관계'가 연결되며 변화상을 보일때 기원과 정체성을 논할수있는것입니다
    단 하나의 요소(결상이식, 치 등)로 역사해석을 시도하면 고조선 빗살무늬토기설?과같은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하게됩니다. 이러한 부분도 충분히 고려해보시는게 어떨가싶습니다
  • @치렐루야
    토론은 이까지하면 충분했고, 마지막으로 인사만 한마디 달겠습니다 ㅎ
    천동설이 지동설로 전환되는데, 1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신학자들만 지동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도 그 당시 지동설을 비판을 많이 했는데, 천동설로만 설명되고 지동설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은 현상들이 몇가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천동설로는 설명이 되고, 지동설로 설명이 안되는 현상을 지동설로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논증을 해서 지동설을 완성한 기간이 약 100년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회주의가 잘못된 이론인지 밝혀지는데는 200년이 더 걸렸습니다.

    오늘의 이 논쟁,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고 누가 맞는지는 끝에가봐야 알겠지요. 홍산문화가 우리민족의 조상들이 세운게 맞다면 저같은 사람은 민족의 역사를 지키는데 일조한 이름없는 공헌자로 남을 것이고, 그 반대의 상황이라면 그냥 환빠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주의자로 남을거에요 ㅎㅎ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동설, 지동설 -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천동설, 사회주의가 없었다면 지동설은 우주선을 쏘기전까지 증명이 안됬을거고, 자본주의는 초반에 나타났던 경제위기왛그외 병폐를 극복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오늘과 같은 토론은 진실에 더 다가가기위한 한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시험기간인데 끝나고 차한잔하면 참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생각있으시면 쪽지 주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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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88 질문 [레알피누] 프랑스어 글쓰기 1 글쓰기 과제 MJ 2018.10.06
진지한글 그저께 ebs 역사강연 보고 실망해서 쓰는글15 츠피스 2018.10.06
101186 질문 부산대 성장판검사 익명스 2018.10.06
101185 웃긴글 현재 진리관 상황~^^13 여긴어디.. 2018.10.06
101184 가벼운글 오늘순버하나요2 룰루빠빠 2018.10.06
101183 질문 도서관 자리 army 2018.10.06
101182 분실/습득 검은색 남자지갑 분실 노오란참외 2018.10.06
101181 질문 .1 쪼로로롱 2018.10.06
101180 질문 10/14일 16시30분 ktx 서울->부산 2명구해요1 skshdpsjwl 2018.10.06
101179 질문 대학실용영어2 싸강 과제1 넴넴2 2018.10.05
101178 질문 놋열 규칙 질문8 D10S 2018.10.05
101177 분실/습득 윤리교육과 14학번 ㅅㅁㅈ님 지갑 습득했습니다1 eirodoll 2018.10.05
101176 진지한글 감사합니다.14 고구마라떼 2018.10.05
101175 질문 부산대 세탁소1 204833333 2018.10.05
101174 질문 북문 소떡소떡 트럭 언제오나요?7 디디에드로그바 2018.10.05
101173 분실/습득 파랑색필통 분실했는데 혹시라도... 배드민턴광 2018.10.05
101172 분실/습득 오늘 중급댄스스포츠 1시 신발 바꿔가신분^^ 갤쁠 2018.10.05
101171 질문 부산대학교 웹메일 가입2 주니준 2018.10.05
101170 질문 해외에서 택배온게 문서실로 갔어요.3 아라라라 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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