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대나무숲에올라온 군인글귀

끌려다니는 기린초2017.12.13 19:34조회 수 5087추천 수 36댓글 20

    • 글자 크기
'21살, 대한민국 군인, 일병.'
지금의 나를 지칭하는 수식어이다. 그 전에 노력으로 이루었던 많은 이름들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고 내 이마에 있는 작대기 두개만이 나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간다.

더위와 추위, 지루함이 이어지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늘어가는 짬만큼 커진 자괴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2년. 긴 시간이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다들 웃으며 내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나도 지금부터 뛰어가면 그들 옆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내 앞의 심판은 출발 방아쇠를 당겨주질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고작 남들의 발걸음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데 차마 붙잡지도 못하는 나는, 울고 싶은데 그런 감정조차 혼자 되씹을수 없는 곳에서 점점 메말라 간다.
오랜만에 나온 사회 속에서는 무시당하고,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있지를 못한다.
복귀까지 남은 시간을 세면서 가슴이 콱 막혀오고, 내가 무슨 잘못을 지었는지를 한참 생각한다. 결국은 체념으로 변할 생각을.

몇몇은 군대는 좋은 재충전의 기회라고, 인생의 마지막 휴가라고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월급도 오르고,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지, 군대 살기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발끈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군인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흔든다.
그럼 나는 그냥 웃으며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군인은 당당해선 안되니까.
몸, 시간 다 바치고도 가장 낮은 신분에 있어야 하고, 비난받고 욕먹어도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는 위치니까.
나 힘들다고, 진짜 미칠거 같고 죽을거같다고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이런 글조차 하나의 발버둥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 글이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할 것도 안다. 누가 봐도 투정뿐이고 불쾌한 글일 뿐이니까.

나를 이렇게 만든 것들에 대해 화를 내고 싶은데,
어떻게라도 내가 이 곳에 이렇게 있는 것을 이해하고 싶은데,
화를 낼 곳이 없다.
탓할 사람이 없다.
그저 할 수 있는건 언젠가 내가 경멸해 마지않던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도일 뿐이다.

내일이 복귀날이다.
다시 인간에서 군인이 될 시간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 글자 크기
[레알피누] 진짜 남자들은 (by 유능한 꽃마리) 남친 너무 답답한데 어떡함? (by 코피나는 네펜데스)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욕설/반말시 글쓰기 권한 영구 정지3 똑똑한 개불알꽃 2019.01.26
공지 사랑학개론 이용규칙 (2018/09/30 최종 업데이트)6 나약한 달뿌리풀 2013.03.04
56878 유부녀와 몰래사겨보신분11 살벌한 천일홍 2013.11.24
56877 너무 능숙한 남자친구27 우아한 꽃창포 2017.07.14
56876 여자들은 신기한게 자기방어가 근본적으로뛰어남32 기발한 고사리 2017.02.07
56875 [레알피누] 남친이랑 관계21 때리고싶은 백선 2018.06.19
56874 아이돌 같이 생긴게 뭐죠?56 착실한 돌가시나무 2017.12.29
56873 (19)고민..24 병걸린 얼룩매일초 2020.03.24
56872 [레알피누] 여자친구 임신35 부지런한 돈나무 2017.09.08
56871 .10 깨끗한 들깨 2017.11.05
56870 여자친구 임신해서 헤어지자고 하고 정리하고 왔습니다.22 민망한 조 2019.03.22
56869 여자가 애프터신청! 남자분들 도와주세요ㅜ15 자상한 봄맞이꽃 2013.11.02
56868 나이 27에 제 인생 첫 성관계를 여친과 가질 예정입니다.13 멋쟁이 벌깨덩굴 2017.06.27
56867 여자분들 호감있는 사람이랑 카톡할때요24 처참한 붓꽃 2016.11.24
56866 키 140대 여자는 어때요?28 똥마려운 맥문동 2014.04.19
56865 요즘 사귀고 관계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20 친숙한 개불알꽃 2018.11.02
56864 못생긴 사람들은 마이러버 안햇음 조켓씀16 유별난 접시꽃 2018.05.03
56863 [레알피누] 진짜 남자들은116 유능한 꽃마리 2015.02.10
서울대대나무숲에올라온 군인글귀20 끌려다니는 기린초 2017.12.13
56861 남친 너무 답답한데 어떡함?50 코피나는 네펜데스 2018.04.13
56860 동거문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48 쌀쌀한 매듭풀 2014.06.30
56859 남자가 데이트할때 반바지 입고 나오면 극혐인가요?!!20 힘좋은 꽃며느리밥풀 2018.08.23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