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대나무숲에올라온 군인글귀

글쓴이
  • 2017.12.13. 19:34
  • 5120
'21살, 대한민국 군인, 일병.'
지금의 나를 지칭하는 수식어이다. 그 전에 노력으로 이루었던 많은 이름들은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고 내 이마에 있는 작대기 두개만이 나를 나타내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간다.

더위와 추위, 지루함이 이어지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늘어가는 짬만큼 커진 자괴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2년. 긴 시간이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다들 웃으며 내 옆을 지나가고 있는데, 나도 지금부터 뛰어가면 그들 옆으로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내 앞의 심판은 출발 방아쇠를 당겨주질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고작 남들의 발걸음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 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데 차마 붙잡지도 못하는 나는, 울고 싶은데 그런 감정조차 혼자 되씹을수 없는 곳에서 점점 메말라 간다.
오랜만에 나온 사회 속에서는 무시당하고,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있지를 못한다.
복귀까지 남은 시간을 세면서 가슴이 콱 막혀오고, 내가 무슨 잘못을 지었는지를 한참 생각한다. 결국은 체념으로 변할 생각을.

몇몇은 군대는 좋은 재충전의 기회라고, 인생의 마지막 휴가라고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월급도 오르고,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지, 군대 살기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발끈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군인냄새가 난다며 고개를 흔든다.
그럼 나는 그냥 웃으며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군인은 당당해선 안되니까.
몸, 시간 다 바치고도 가장 낮은 신분에 있어야 하고, 비난받고 욕먹어도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는 위치니까.
나 힘들다고, 진짜 미칠거 같고 죽을거같다고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이런 글조차 하나의 발버둥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 글이 많은 공감을 얻지 못할 것도 안다. 누가 봐도 투정뿐이고 불쾌한 글일 뿐이니까.

나를 이렇게 만든 것들에 대해 화를 내고 싶은데,
어떻게라도 내가 이 곳에 이렇게 있는 것을 이해하고 싶은데,
화를 낼 곳이 없다.
탓할 사람이 없다.
그저 할 수 있는건 언젠가 내가 경멸해 마지않던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도일 뿐이다.

내일이 복귀날이다.
다시 인간에서 군인이 될 시간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권한이 없습니다.
댓글 20
현명한 쇠물푸레 17.12.13. 19:53
나눈 전역했눈뎅ㅎㅎ
0 1
best 침울한 쇠뜨기 17.12.13. 19:58
다녀오면 어떻게 다녀왔는지 모르겠어요. 2년을 잃어버린 기분......
17 0
유능한 갈퀴덩굴 17.12.16. 01:55
침울한 쇠뜨기
진짜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있는데 뭔가 시간을 뛰어넘은 기분이에요. 아무런 의식도 없이 2년간 병원에 있다가 눈을 뜬 환자처럼, 청춘의 2년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거 같아요
1 0
훈훈한 천수국 17.12.13. 19:59
.
0 0
기쁜 백일홍 17.12.13. 20:04
훈훈한 천수국
서울대생인데
0 0
훈훈한 천수국 17.12.13. 20:20
기쁜 백일홍
아하 제목을 안 봫네
0 0
일등 파피루스 17.12.13. 23:25
ㅈ! ㅅ!
0 1
착한 박하 17.12.13. 23:50
잃어버린 2년
0 0
멋진 고들빼기 17.12.14. 01:24
사라진 2년
0 0
점잖은 헛개나무 17.12.14. 09:14
앞으로 처우도 많이 개선돠고 군대 복무 기간이 더더욱 줄었으면 좋겠네요 ㅠㅠ 다들 화이팅...
0 0
깨끗한 장구채 17.12.15. 05:34
분단국가인게 질못이죠 뭐...ㅜ 전 여자지만 마음이 안좋네요
0 0
진실한 구절초 17.12.16. 01:44
아무리 군대가 좋아져도 군대는 힘들수밖에 없어요
자유를 제한당하고 명령과 복종이 필요한 집단이라..
0 0
멋쟁이 무 17.12.16. 15:30
"그래서요 깔깔깔"
1 0
저렴한 배초향 17.12.16. 15:48
2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비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싼 값에 후려칠 길이 없어보이네요
0 0
의연한 달뿌리풀 17.12.16. 16:21
그냥 시간당 최저시급으로 계산해서 돈만줘도 아무소리 안나올텐데 시급 500원에 후려치니 저런소리가 나오지 어휴
0 0
코피나는 꿩의바람꽃 17.12.17. 12:51
ㅋㅋㅋㅋㅋ 네 다 짬
0 0
기쁜 파리지옥 17.12.17. 14:17
솔직히 복무하는건 우리나라 상황이 이러니 하는데 대우가 너무 안좋음. 안에선 병사라고 무시당하고 욕먹고 나와서도 군바리주제에라느니 뭐니 해대니 갈 곳이 없음. 진짜 예전에 동기들이랑 외출 나가서 편의점갔는데 편의점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덕분에 안심하고 지낸다고 한마디 해주시는데 너무 기분좋았네요.
0 0
해맑은 배초향 17.12.18. 00:47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입대날이나 전역날을 꿈 꾸는 경우가 있음.. 정말 트라우마 심한 사람들 영상으로만 보고 이해안됐는데 어느 정도 이해하게됨.. 군대 정말 ㅈ같음
0 0
유능한 디기탈리스 17.12.18. 19:52
헌법재판소 오피셜: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할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뿐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 할수는 없는것이다.

이게 우리나라의 헌법을 해석의 최고기관 의식수준입니다. 이나라의 수준은 딱 이정도입니다. 걍 어떻게든 안가는게 최고에요ㅋㅋㅋ 그저 국민 어떻게든 비용덜들이고 더부려먹을까 하는생각 뿐이죠 ㅋㅋㅋ
0 0
미운 고사리 17.12.18. 21:33
남자면 가야지 말이 많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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