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夢 : 또 하나의 나
회백색 교실이다.
뿌옇게 흐린 교실 풍경에 유독 뚜렷하게 보이는 검정 교복...
여자는 검은 블라우스에 검은 스커트를 입고 있다.
남자들은 흰색셔츠에 검은 하의...
분명 거기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나는... 아니 내가 자리 때문에 누군가와 말다툼을 한다.
몸싸움까진 아니지만 교실의 시선은 집중된다.
이것 역시 어디선가의 나인가...
그렇다면 모두의 시선 가운데 나를 보지 않는... 아니... 무시하려는 듯한 한 사람은...
그녀... 인가...
숨이 막힌다.
왜... 왜 그녀인가...
그녀일 수밖에 없는 건가...
익숙하다.
벌써 몇 번째...
그녀와 나의 인연은 역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어디서건 나와 만나고...
나와...
나와...
나와... 헤어지고 그렇게 서로를 잊으려는 듯...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가...
그렇다면 이곳의 나는 너무...
가혹하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그녀는 떠나갔다는...
답답하다...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치밀어 오르다 나의 뇌를 뜨겁게 한다.
심박 수가 빨라진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나의 자리가 그녀의 앞이다.
원치 않았나 보다.
어쩌면 누군가의 장난일지도...
그런데 여기의 나는 그래도 행복한 것 아닐까?
나는 그녀를 보지 못한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잊고 있어도
불현듯 온몸을 떨게 만들며
하루 종일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그런 일상이지만...
내 주위에 그녀는 없다.
하지만 여긴 뿌옇게 흐리기 만한 회백색 교실이지만...
단지 그것뿐이지만...
그녀가 있다...
그녀가 있다.
언젠가부터 교단에는 누군가가 서서 떠들어 대고 있다.
의자가 너무 낮다.
앞사람 상체에 가려서 무얼 하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뒤도...
신경 쓰인다...
아...
그녀가 있었지... 나의 뒷자리엔...
그렇다면 아주 우스워 보일 것이다.
책상이 가슴높이까지 오는 아주 낮은 의자에 앉아,
목을 빼고 앞을 보려 애쓰는 나의 모습은...
불현듯 화가 났다.
책상을 걷어차고 일어난다.
그때 그녀도 일어났다.
순간 당황한 나는 내색치 않고 뒤를 본다.
그녀가 책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관심한 척 의자를 들었다.
그리고 뒤쪽 빈자리로 갔다.
동시에 그녀가 책상 위를 정리한 물건들을 안고 내가 가려는 빈자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팔을 뻗어 그녀의 앞을 막았다.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그녀가 그녀인 건 알겠는데,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그녀라는 건 어떻게 확신한 거지...?
내가 팔을 뻗자 그녀는 팔에 닿지 않았음에도 움찔하며 걸음을 멈춘다.
가슴안쪽이 저려온다.
코끝도 찡해오지만...
눈이 슬픔을 머금으려 하지만...
그런 나의 상황을 그녀가 알아채게 할 순 없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일까?
아님 나를...
머리 속은 어떠한 이유라도 만들어내려 애써 노력한다.
그 노력 덕분에...
잠시.. 아니... 조금 지난 시간 동안 내 시야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하려던 게 뭔지 생각이 났지만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아픔으로 가까스로 팔을 내렸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 체 나를 보려하지 않는다.
그녀의 모습이 흐려진다.
답답함이 엄습해온다.
숨이 막힌다.
그녀가 눈앞에 있는데...
그녀가 바로 저기 눈앞에 있는데...
눈을 비벼보지만 형체는 더 흐려져 간다.
주위의 웅성거림도 라디오볼륨을 줄이듯 줄어들더니 어느새 적막한 고요가 나를 덮친다.
이제 주변도 하얗게 물들어버렸다.
텅 빈 공간에 나 혼자 서서 이미 보이지 않는 그녀를 그리며 서있다.
나...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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