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과 김해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대에 여러 소국들의 연맹체인 가야가 등장했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상 가야의 유물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우리학교와 가까운 동래구 복천동에서 가야의 유물들이 많이 발굴돼 우리학교 박물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잊혀져있던 가야문화를 느끼기 위해 이상윤(물리교육 2) 씨와 정선미(물리교육 3) 씨가 박물관을 찾았다.
시대별 유물이 전시돼 있던 1층과 달리 우리학교 박물관 2층에는 가야의 문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가야문화전시실이 위치하고 있다. 2층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다양한 토기들이 눈에 띈다. 저온에서 생산된 삼한시대의 와질토기문화에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도질토기가 가야의 토기문화를 이끌며 2층에는 이러한 도질토기가 전시돼 있다. 또한 가야의 유명한 철기 유물들을 볼 수 있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큰 판갑옷과 철로 제작된 다양한 무기 및 마구 등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시 가야의 철기가 워낙 유명해 중국과 일본인들이 이를 구입하기 위해 가야를 찾았다고 할 정도다. 여러 유물들을 관람하던 상윤 씨와 선미 씨는 “토기와 철기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불을 다루는 기술이 나라마다 얼마나 달랐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이재진(고고 99, 졸업) 학예연구원은 “지금도 국가간 기술교류가 이뤄지고 있듯이 그 당시에도 수준격차는 있었으나 필수적인 기술들은 함께 교류·확보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박물관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우리학교 박물관만의 특별한 전시는 바로 고인골이다. 학생들에게 “마야인들이 가야인들과 같은 인종으로 추측된다는 설을 들어본 적 있나요?”라고 묻는 이재진 학예원구원.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생아 때 머리 앞뒤를 돌로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편두 풍습은 마야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김해 예안리에서 출토된 4세기 여성의 30%가 이마가 납작한 편두로 밝혀지며 우리 박물관에는 이 특성을 보여주는 고인골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2층 전시실의 한편에 전시되고 있는 가야의 이형토기는 가야인들의 장송의례, 신앙행위에 사용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세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렇듯 높은 가치를 지닌 가야의 이형토기는 우리학교뿐 아니라 다른 박물관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한 달간 국립제주박물관에서는 우리학교 박물관의 가야의 이형토기를 비롯한 여러 상형토기들을 대여해 특별공개전시를 개최했다. 국립제주박물관 오연숙 학예연구사는 “새나 말 등의 특이한 모양으로 제작된 이형토기들은 가야와 신라가 있던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발굴되는 편”이라며 “특히 부산대학교 박물관은 여러 무덤에서 직접 발굴·조사한 훌륭한 유물들이 많아 이 유물들을 대여해 특별전시를 열었다”고 밝혔다.
보통 사람들은 일본문화에 영향을 준 나라로 백제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가야의 풍부한 철과 그 생산 기술은 일본에 전해져 두 나라 간의 활발한 교류로 이어졌다. 이재진 학예연구원는 “백제뿐 아니라 가야도 일본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따라서 가야의 유물과 우리학교 박물관의 고인골을 보기 위해 많은 일본 학자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학교 박물관에는 특별연구원으로 여러 일본 학자들이 함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가야인들의 생활상, 정신세계, 무기, 장신구 등을 나타내는 유물들이 2층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어 우리학교 박물관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꼽히고 있지만 어려움도 따른다. 신경철(고고) 관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대학 박물관에 비해 학술적으로 중요하고 방대한 양의 가야 유물이 있는 박물관으로 주목 받았다”며 “그러나 현재는 많은 양의 유물에 비해 전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심 또한 부족한 현실이라 타 대학보다 뒤처져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다양한 가야문화를 엿볼 수 있었던 2층 전시실을 2시간 동안 관람했던 두 사람은 이날 가야문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상윤 씨는 “물리학이 전공이라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접할 기회가 잘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선미 씨 역시 “학예연구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한국사가 확실하게 와 닿았다”며 “당시에 철기를 제작했다는 사실이나 이러한 유물들이 우리학교 박물관에 잘 복구돼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96
시대별 유물이 전시돼 있던 1층과 달리 우리학교 박물관 2층에는 가야의 문화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가야문화전시실이 위치하고 있다. 2층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다양한 토기들이 눈에 띈다. 저온에서 생산된 삼한시대의 와질토기문화에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도질토기가 가야의 토기문화를 이끌며 2층에는 이러한 도질토기가 전시돼 있다. 또한 가야의 유명한 철기 유물들을 볼 수 있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큰 판갑옷과 철로 제작된 다양한 무기 및 마구 등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시 가야의 철기가 워낙 유명해 중국과 일본인들이 이를 구입하기 위해 가야를 찾았다고 할 정도다. 여러 유물들을 관람하던 상윤 씨와 선미 씨는 “토기와 철기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불을 다루는 기술이 나라마다 얼마나 달랐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이재진(고고 99, 졸업) 학예연구원은 “지금도 국가간 기술교류가 이뤄지고 있듯이 그 당시에도 수준격차는 있었으나 필수적인 기술들은 함께 교류·확보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박물관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우리학교 박물관만의 특별한 전시는 바로 고인골이다. 학생들에게 “마야인들이 가야인들과 같은 인종으로 추측된다는 설을 들어본 적 있나요?”라고 묻는 이재진 학예원구원.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생아 때 머리 앞뒤를 돌로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편두 풍습은 마야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김해 예안리에서 출토된 4세기 여성의 30%가 이마가 납작한 편두로 밝혀지며 우리 박물관에는 이 특성을 보여주는 고인골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2층 전시실의 한편에 전시되고 있는 가야의 이형토기는 가야인들의 장송의례, 신앙행위에 사용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세관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렇듯 높은 가치를 지닌 가야의 이형토기는 우리학교뿐 아니라 다른 박물관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한 달간 국립제주박물관에서는 우리학교 박물관의 가야의 이형토기를 비롯한 여러 상형토기들을 대여해 특별공개전시를 개최했다. 국립제주박물관 오연숙 학예연구사는 “새나 말 등의 특이한 모양으로 제작된 이형토기들은 가야와 신라가 있던 경상도 지역에서 많이 발굴되는 편”이라며 “특히 부산대학교 박물관은 여러 무덤에서 직접 발굴·조사한 훌륭한 유물들이 많아 이 유물들을 대여해 특별전시를 열었다”고 밝혔다.
보통 사람들은 일본문화에 영향을 준 나라로 백제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가야의 풍부한 철과 그 생산 기술은 일본에 전해져 두 나라 간의 활발한 교류로 이어졌다. 이재진 학예연구원는 “백제뿐 아니라 가야도 일본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따라서 가야의 유물과 우리학교 박물관의 고인골을 보기 위해 많은 일본 학자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학교 박물관에는 특별연구원으로 여러 일본 학자들이 함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가야인들의 생활상, 정신세계, 무기, 장신구 등을 나타내는 유물들이 2층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어 우리학교 박물관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꼽히고 있지만 어려움도 따른다. 신경철(고고) 관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대학 박물관에 비해 학술적으로 중요하고 방대한 양의 가야 유물이 있는 박물관으로 주목 받았다”며 “그러나 현재는 많은 양의 유물에 비해 전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관심 또한 부족한 현실이라 타 대학보다 뒤처져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다양한 가야문화를 엿볼 수 있었던 2층 전시실을 2시간 동안 관람했던 두 사람은 이날 가야문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상윤 씨는 “물리학이 전공이라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접할 기회가 잘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선미 씨 역시 “학예연구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한국사가 확실하게 와 닿았다”며 “당시에 철기를 제작했다는 사실이나 이러한 유물들이 우리학교 박물관에 잘 복구돼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원문출처 : http://weekly.pusan.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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