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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비의 환담 – 똥을 스스로 치우는 개 이야기

핳하핳2018.10.01 17:03조회 수 496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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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두 선비가 있었다. 한 선비는 성이 정()이요, 이름은 의()였고, 다른 선비는 성이 김이고 이름은 아무개였다. 이 두 선비는 어릴 때 동문수학하여 한 몸처럼 지내며 사귀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장성한 후로 정의는 고향 산골에 처박혀 서책이나 읽는 서생이 되었으며, 김 아무개는 경성으로 가 ○○신보의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철마가 지나가는 경성에서 김 아무개는 자신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껴 자신을 스스로 K라 불렀다. 이렇게 떨어진 뒤에도 두 선비는 서로를 그리워하여 종종 만나곤 했으니 이 이야기도 두 선비가 나누는 환담의 일부였음이라.

 

 

정의는 K에게 세상 견문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하나의 낙인지라, 이 날도 정의는 자주 가는 주막에 술잔을 시키고 목을 빼놓고 기다렸다.

자네가 먼저 와 있었구먼. 내 도중에 보낼 것이 있어 전보를 치고 온다고 늦었네.”

괜찮네. 어서 와서 앉으이

정의와 K는 서로 앉으며 근황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때 K는 연신 웃음기 띈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K는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혀로 내뱉지 못하면 저렇게 웃는 자태를 숨기지 못하느니라. 정의도 얼른 듣고 싶어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가. 빨리 말해보게.”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 저잣거리에서도 이미 퍼진 이야긴데 자네도 혹시 들었는지 모르겠구려.”

내 요즈음에는 저잣거리도 잘 가지 않으니 걱정 말고 빨리 이야기나 풀어주게나.”

정의의 답변에 K는 환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내가 기자 아닌가. 경상도 지역에 재미난 일이 있다 해서 간 적이 있었네. 그 때 정말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도대체 무슨 기묘한 일이던고?”

그 지역에 아주 큰 마름이 있었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한스럽네만, 소작 농민들은 자기네 마름을 파리라고 부르더군.”

도대체 왜 파리라고 하던가? 똥을 좋아해서 그런가?”

그게 마름 목소리가 파리와 같아서 그렇게 붙였다고 하더군. 목소리가 마치 왜앵-왜앵하는 것이 직접 들어보면 정말 파리와 같다고 하더군. 그 마름은 악명도 높더군. 반년마다 소작농들과 결정하는 회의가 있는데, 단체로 모내기하는 날에 잡아서 자기 맘대로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군.”

거 참 나쁜 마름이구만. 그래서 기묘한 일은 무엇이오?”

아직 안 끝났네. 하여간 그 마름은 부유해서 기묘한 동물도 여럿 키웠다고 하더군. 그 부유함이 어디서 왔겠는가? 다 소작농들의 고혈이겠지. 그러니 소작농들의 불만이 많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직접 욕은 하지 못하니 알음알음 뒷담이나 늘어놓는 것이 전부였지. 가끔 과격한 이는 마름 집에 벽서도 쓰곤 했는데, 이 때문에 기묘한 일이 발생했소.”

, 그러니 그 기묘한 일이 대관절 무엇이란 말이오.”

K는 정의가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 더 골려줄까도 생각했지마는 그 모습이 주인을 바라보는 개의 모습과 같아 그대로 얘기하기로 하였다.

그 기묘한 일이 무엇인가. 벽서를 한밤중에 썼으면 아무도 모를 것인데 며칠 뒤 벽서를 쓴 자의 집에 아주 지독한 똥이 있었다고 하더군.”

똥 말인가? 그래도 거름으로 쓸 수 있으니 나쁘지는 않은 것 아닌가?”

참 맘 편한 소릴 하는구먼. 그 똥 냄새가 지독하여 한 밤중에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고, 치운 뒤에도 그 흔적이 사흘을 갔다고 하더군. 게다가 너무 썩어서 거름으로도 못쓸 정도라 하오. 게다가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네.”

그 똥이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단 말인가?”

바로 그렇다네. 마름에 대한 뒷담을 열성적으로 하던 이들의 집에도 이런 똥들이 놓여 있었다고 하더군. 시간이 지나자 마름의 뒷담을 듣던 사람들의 집에도 똥이 놓여 있었다네. 똥이 없었던 집들은 그 마름에 아양을 떨고 찬양을 하던 일가들 밖에 없었다더군.”

참으로 기묘한 일일세.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전에 목 좀 축이세. 맛있는 술과 국밥이 있지 않은가.”

 

 

K는 웃으며 정의와 함께 술을 한 잔 마시었다. 이내 정의는 국밥을 먹으려 하였으나, K가 얘기한 똥이 생각에서 떠나지 않아, 그냥 수저를 내려놓았다.

자네 참 비위가 강하구려. 난 자네의 똥 이야기 때문에 몇 수저 들지도 못했네.”

먹어야 사는 것 아닌가. 자네 만난 뒤에 또 갈 곳이 있으니 억지로라도 들었네.”

그러기에는 너무 잘 먹는 것 아닌가. 빨리 다음 이야기나 해주시오.”

K는 연거푸 술을 두어 잔 들더니 다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그래서 집에 똥이 있는 소작농들이 회의를 했다더군. 마름과 친한 자들에게는 똥이 없으니 이는 필시 마름의 짓일 것이라 결론을 내렸네. 그 중 한 명이 계책을 내놓았는데, 각자 집에서 한 명이 한밤중에 자지 않고 지킨다면 필시 그 현장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 말일세. 모두 동의하여 각자 가족 중에 한 사람은 밤에 자지 않고 집을 지키게 했다더군.”

그래서 그 범인은 잡았는가?”

그런데 참 기묘하지. 이 아무개네 아낙네는 네 발로 걷는 짐승을 보았고, 정 아무개네 아이는 웃는 소리만 들었다고 하였고, 차 아무개는 마치 미더덕처럼 생긴 것이 다녀갔다고 하니. 모두 영문을 알 수 없었다네. 귀신이 들렸을 수 있으니 굿을 하자고도 했지만, 한 청년이 자신이 밤을 새워서 범인을 잡을 것이니 같이 도와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몇 장정들이 지원했다네. 그 날 밤. 그 장정들은 모여서 같이 밤을 지새웠더군. 지켜보니 똥을 옮기는 자가 여럿인데, 밤이 어두워 그 형체는 흐릿했다고 하더군. 장정들은 각자 대상을 정해서 추적을 했지만 잡지는 못하였어. 그런데 다들 마름의 집 앞에서 모이게 되었다네. 그것들이 다 마름의 집으로 들어간 것인 게지.”

역시 마름이 범인이었구먼. 그래서 그 마름 놈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음 날 소작농들이 단체로 마름을 찾아갔다네. 소작농들이 과격하게 항의해도 마름은 모르겠다고 발뺌을 뺐다더군. 소작농들은 마름이 기르던 동물들을 삿대질하며 저것들이 한 짓은 아니냐고 해도 자신은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더군. 이에 소작농들이 관청에 이 사건을 고발했네.”

참으로 뻔뻔한 놈일세.”

그런데 기묘한 일이 하나 더 생겼다네. 그날 밤 그 동네에 모든 똥들이 치워졌더군. 그리고 개가 구슬피 울부짖는 소리만 들렸다고 하더군.”

개소리를 들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개소리에 잠을 설친 소작농들이 다음 날 다시 마름 집을 찾았네. , 글쎄 마름이 하는 소리가 무엇이냐. 간밤에 개소리는 자신이 키우던 동물 중 하나였는데, 그 동물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똥을 옮겼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이렇게 불편을 줘서 죄송하지만, 자신은 그런 짓을 시키지는 않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소작농들이 그 놈 면상 좀 봅시다하니 마름 하는 말이, 스스로 똥을 치우고 저 멀리 떠났다고 하더군.”

참 웃긴 일일세.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 잘못을 저지르면, 응당 주인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동물이 길거리에 똥을 싸면 주인이 치워야 하는 것인데, 동물 스스로가 그 똥을 치웠다는 것도 참 기묘한 일이구려.”

내 말이 그렇고말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구려.”

 

 

이야기의 끝이 만족스럽지 않은 정의는 이내 가슴 속이 답답해 다시 K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 마름은 혼쭐이 났는가?”

아쉽게도 다음 기사를 작성하러 다시 경성으로 올라와 듣지 못하였네.”

참으로 답답한 일일세. 자네가 도와줄 수 있는 일 아닌가? 자네처럼 식견 있는 자가 이런 불의한 일에 끼어들어 해결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소작농들을 도와줄 것인가. 공자께서도 군자는 오로지 의에 따라서 행동한다 했거늘 자네는 왜 그러지 않았는가?”

정의가 못내 성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대자 K는 허허허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예전에도 자네의 의는 10명의 선비가 와도 못 이긴다하여 내가 십()선비라 했는데, 여전히 그 기질을 버리지 못하는구려. 나 역시 분기가 올라왔으나, 그 이전에 봉급을 받는 기자인지라 어쩔 수 없었네. 자네가 공자 이야기를 옮기니 나도 덧붙여 말하면 군자는 말에 앞서 행동을 하고 그 후에 말이 뒤따른다고 하는데 자네는 여전히 말만 앞서는구려.”

이에 정의는 놀림을 받은 것을 알고 얼굴이 붉어졌음이라. 탁주를 졸졸 따르며 한스러운 듯 말하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내 옳은 말을 하여도 힘이 없으니, 그 의는 쓸모없음이라. 내 서재에서 맑스니 엥겔스니 하는 것들을 읽어도 조선에 의를 세울 수 없으니 한 없이 부끄러워 산속에 있는 것 아니오.”

내 놀림이 지나쳤나 보오. 자네의 힘없는 모습을 보이 가슴이 찢어지는구려. 나 역시 기자로 올바른 뜻을 찾기 위해 힘쓰려 했으나 하루 살림도 버거운 처지요. 이제는 의니 이런 것을 버리고 총독부 관료가 될까, 시골로 내려가 학생들이나 가르치는 선생이 될까 항상 고민만 하고 있소.”

어떻게 나라를 빼앗은 자의 앞잡이가 되려 하는가. 듣기 싫은 소리는 하지도 마시오.”

먹고 사는 것이 빠듯하니 그런 생각도 하는 것이오. 이제 가야 될 시간이오. 다음 만남을 기약하겠소.”

K는 주막을 떠났고 정의는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그 소작농들을 생각하였다. 정의는 스산한 가을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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