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글

흔한 남자 이야기1

글쟁이2013.09.08 01:15조회 수 3331추천 수 7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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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란통닭 골목

 

 세상엔 참 흔한 사람들이 있다. 내 지론 상으론 아주 많다. 뭐,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배우기를 우리들 각자는 각각 3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선택된 정자가 난자와 결합한 존재라지만, 막상 세상에 눈을 뜨고 사회에 내던져지면 거기서 만나는 사람 모두가 3억분의 1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3억분의 1이라는 확률이 어처구니없게 참 평범한 확률이구나, 하는 허탈한 생각이 들지. 그리고 여기서 내가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인식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나는 지극히 흔한 남자다. 난 이걸 꽤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아, 물론 내가 꿈도 희망도 없는 비관론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 비관론자라는 딱지의 기준도 굉장히 애매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나는 비관론자는 아니다. 귓등으로 주워듣기로 괴델이라는 작자가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학적 진리들의 불확실성을 증명했다는데, 이렇듯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심지어 수학의 근엄한 숫자들까지도 믿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인데, 그렇게 섣불리 염세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으니깐. 다만 포인트는 반대로 ‘내가 특별하다’는 긍정을 예측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중학교쯤에 나는 정신의학에선 이런 심리에 ‘과대망상증’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대망상. 내가 들어본 의학용어들 중에 이렇게나 인간과 가까운 용어가 또 있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평범했고, 내 학교생활도 평범했다. 내 용모부터 시작해서 성적, 입담, 운동신경 심지어는 성격마저도 평범했다. 응? 맨 뒤에 성격이 평범하다는 말이 뭐냐고? 글쎄. 어쩔 땐 단호하고, 어쩔 땐 우유부단하고 또 어쩔 땐 야무지고, 또 어쩔 땐 헤이하고……으음, 애매하군. 언어로 전달하기에 애매한 개념들이 있는데, ‘평범한 성격’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러한 것인 듯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대해서 큰 문제점을 느끼지 않는다. 제대로 언어화되지 않았다고 그걸 읽는 사람들이 이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소리는 아니니깐. 이상한 소리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사람들은 누가 ‘저는 평범한 성격입니다’라고 말하면 ‘응, 그렇구나’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평범한’이라는 형용사는 대충 이런 위력을 가지는 언어다. 만사형통이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교육의 커다란 모순 하나를 깨달았다. 이때까지 우리 모두가 하나하나 특별한 존재라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받는 진학상담에선 용모도, 예체능에 대한 재능도 평범한 축에 속한다면 공부하는 게 정답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점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어쩔 수 없지만 그게 현실이다’이라는 어떻게 보면 위로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놀리는 것 같기도 한 말이 어떤 식으로든 따라붙는다.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면 간접적인 뉘앙스 안에서라도.

 

 그렇게 3억분의 1의 특별한 존재들은 모두 평범한 존재들이 하는 공부에 목을 맨다. 아니, 단어를 정정하자. 공부가 아니라 ‘입시’라고. 뭐, 다음부터는 이 시대의 교육과정을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장식한 나와 같은 여러분들에겐 너무도 친숙한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모의고사-중간고사-모의고사-기말고사-모이고사……그리고 대망의 수능. 후배들이 엿을 나눠주고 학부모들은 도끼를 들고 시험장 입구를 초조히 서성인다. 이게 끝나면 대학이 우리를 기다린다. 재수나, 삼수를 하는 수험생도 있지만, 어찌됐든 대개는 3년 터울 안에 대학에 들어간다. 왜? 남들 다 그러거든. 우리들 대부분은 지극히 평범한, 흔한 사람들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거기까지지.

 

 이쯤 되면 지루한 형용사의 반복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는 평범하게 입시를 마쳤고,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아닌 평범한 성적으로 평범한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평범한 1학년 생활을 시작했지. 어느 것 하나 규범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이 없었다. 예비대, MT, 술, 토, 숙취, 심심하게 끝난 썸, 개강, 개총, 각종 뒤풀이들……그 와중에서 기억나는 사건 하나는 4월 말에 중간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술을 마실 때였다. 대화주제는 평범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니, 무슨 시험이 이랬느니, 교수가 뒤통수를 쳤으니, 그때 W를 띄웠어야했느니, 하는 그저 그런 주제들. 그 속의 흔한 남자였던 나는 그 얘기를 듣다가 문득 지겨워졌다. 어릴 때도 몇 번 이런 지겨움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런다가 내가 평범하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었기에 금방 자숙할 수 있었다. 근데, 그날은 좀 달랐다. 스스로를 견디게 힘들게 만드는 그런 구석이 있는 지겨움이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술집을 나간 나는 골목 벽에 기대서 혼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곤 곧 죽을 사람 주마등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온 과거를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하하, 20년이 살았는데 회상은 겨우 10초 남짓하더군. 술 때문일까? 안타깝지만 그건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진실은 정말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이 10초에 불과하다는 지랄 같은 사실이었다. 너무 평범하게 살아서 기억나는 게 몇 개 없었다. 마치 긴 하루를 산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삶이란, 이렇듯 매순간을 지루하게 만들지만, 뒤돌아본 삶은 매우 짧도록 만들어주더이다. 그리고 사춘기 때 진작에 했어야할 ‘회의’라는 것을 그때 했다. 밤 10시쯤 노란통닭있는 그 골목 벽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달라붙어서.

 

 다음날 눈을 뜨니 동기자취방이더군. 매스꺼운 속에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동기노트북을 켜서 입대를 신청했다. 육군 아무거나, 최대한 빠른 시일로 넣었다. 그리고 6월 초에 군주도 없이 훌쩍 군대로 떠났다. 계속 대학을 다니기엔 허무감이 너무 컸다. 딱히 답이 없을 땐 군대라잖아? 선배조언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거지만, 군대도 평범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던가, 몸에 어지간한 이상이 없지 않는 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군대에 가니깐, 평범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평범함이라는 정의엔 ‘남들 다 하는’ 그런 뉘앙스가 포함되니깐. 사회와 비교했을 때 군대가 특별한 것이지, 군대와 그 안의 구성원들의 삶을 비교하자면 특별한 것 따위는 없었다. 군생활이야 다 비슷비슷한 것이었고, 그 안에서 힘들다, 편하다가 나뉘었지만 군대 전체라는 큰 시야에선 결국 평범한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평범한 이등병은 평범한 육군 병장이 되었고, 시간차면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전역을 하고 사회로 복귀했다. 군복무 21개월. 길었냐고?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길고 짧음은 우리들의 느낌일 뿐, 시간의 절대성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보단 차라리 특별했냐고 물어라. 그것이 의미 있음을 논할 수 있는 질문이니깐. 과대망상에 걸리고픈 욕구가 꿈틀거리지만, 거부한다. 내 군생활은 평범했다. 거기서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탄생-초중고-군대, 이렇게 너무도 간단히 요약 가능한 삶을 살은 23살 흔한 남자들 중 하나인 나는 전역 후 서너 달 빈둥거리다가 복학을 했다. 네이버에 ‘남자 가을 코디’를 쳐서 최대한 내 체형에 맞는 평범한 스타일로 코디를 맞춰 입고 학교로 갔다. 친구라고 부르기엔 좀 애매한 아는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전에 알던 선배들은 다들 휴학이라도 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학교엔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진 기분이 들었다. 뭐, 그게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이유모를 섭섭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학기 개총에 참석했고, 뒤풀이도 따라갔다. 복학생이 학과생활에 적응하는 가장 평범한 방법. 뒤풀이는 2차까지 이어졌고, 2차는 노란통닭이었다. 이 학과는 왜 이렇게 노란통닭은 애용하는지. 2차도 꾸역꾸역 따라갔다. 술자리 와중에 술 깨면 어색해질 후배들에게 폰 번호를 주고,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는 선배들 번호를 딴다. 이 중에서 다음날 잘 들어갔냐는 안부 카톡이라도 하나 받을 수 있는 놈이 도대체 몇 놈이나 될까? 하나명도 없으리라는 점에 내 지갑에 있는 돈 전부를 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짓을 반복한다. 삶은 하나의 관성이고 습관이다. 늘 하던 데로 살려고 하지.

 

 맥주잔을 홀짝거리다 밖으로 나왔다. 2년 전에도 여기서 어쭙잖은 회의감 속에 있었었는데, 나는 그 후 2년간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밖에 나왔다고 달리 내가 할 게 있나? 마치 습관이요, 술버릇인 것 마냥, 2년 전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전에 쭈그리고 앉았던 곳이나 어디였더라, 하고 골목을 걸었다. 근데, 2년 전에 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그 자리에 어떤 여자애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내 발걸음 소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여자애가 고개를 빼꼼히 올려 나를 쳐다봤다. 2년 전 내 모습이 겹쳐서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도 지루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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