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양심, 행복은 돈보다 열등하다.
- 2017.05.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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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우리는 목표가 있으며, 하루하루 목적이 있고, 매순간 계획이 있다.
이것을 달성하게 해주는 것은 궁극적으로 돈이고,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어있다.
목표는 바뀔 수 있으며, 목적이 불가능 할 수 있으며, 계획을 간단하계 성취할 수 있다. 절대 유한하지 않으며 계속 바뀐다.
하지만 돈은 변하지 않는다. 물질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어떤 사물이 물리학의 원칙에 위배되는 현상을 일으킬 수 없으며, 항상 원칙에 있어서 진솔하다.
그런데 곡학아세 하는 인간들은 마치 돈이 다가 아닌 척 나불대는 경우가 있다. 돈보다 사랑,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는 인간들.
근데 그건 알아야 한다. 인간은 생물로서 결국 불완전한 존재이고, 절대 불변의 진리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확실한 목표보다는 목표를 언제든 이룩하게 해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확보하는게 우리에게 훨씬 이득이다.
돈을 모아야 한다, 돈을 잘 써야 한다, 그 무엇보다 돈은 궁극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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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참꽃마리]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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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버지 머릿속에 이혼 생각만 수백번 했을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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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한 삼나무]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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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행복이 중요하다.
2.행복 X영원, 변함
3.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 즉 돈을 모으는 것이 추상적으로 행복을 쫒는 것 보다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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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부겐빌레아]님의 댓글을 신고합니다.
근데 그거 다 뻥이예요.
그리고 물질에 찌든 한국인들이 해외나가면 더 행복해질 것 같나요? 아니요, 절대 아니요.
사람들은 뭔가를 누리면 더 큰걸 바라지 현재의 혜택을 져버리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 많은 부분이 사업실패나 빚 등 돈과 관련된 문제인건 아시죠?
과거의 사람들은 잃을게 없으니까 별로 타격 안입었겠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들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고 허망함을 느끼고 자살충동을 갖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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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실패나 빚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자살율의 1위다...는 근거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 케이스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죠. 말씀하신대로 높아진 GDP가 행복의 허들을 높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기에 사업실패나 빚더미에 앉은 일부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충족할 수 있는 행복을 얻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 거겠죠?
하지만 돈이 아닌 곳에서 행복이라는 감각을 얻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다릅니다. 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허들 자체가 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본인의 기준이 그렇다면 돈이 행복이라는 주장을 반박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쾌감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허들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무명의 아티스트가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단칸방 허름한 집에서 살아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돈)가 불러오는 행복을 넘기위한 허들은 그에게 너무나도 낮습니다. 게다가 그 상한선이 현재로선 명확하기에 그는 그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로써의 인지도입니다. 그가 유튜브를 한다고 가정합시다. 동영상의 댓글이 많아지고 조회수가 많아질 수록 그가 넘어야 할 (인지도로 채울 수 있는) 허들은 높아집니다. 광고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더라 할지라도 그가 올린 새 영상의 반응이 전만 못하다면 그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자살율이 낮은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도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허들 자체가 낮다. 사람들은 더 행복하기 위해 그 한계선이 명확한 물질적 수입 대신 다른 허들을 넘는다.
말씀드린 스웨덴, 스위스는 이미 높아져버린 (돈으로 충족할 수 있는) 행복의 허들을 국가의 정책으로 낮춘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국가나 그렇겠지만 한국 또한 선진국으로써 앞으로 표방해야할 지향점이 아닌 가 싶습니다.
제 근거 대부분은 '호모데우스'라는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흥미로운 책이니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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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권위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저자는 물론 진리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저자 또한 사람입니다. 결국 이 책은 '저자의 주장'에 불과할 뿐, 본인께서 책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셨다면 결국 '저자'나 다를바 없는 사람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만든 배경도 한번 생각해보셨는지요? 잘 팔리는 서적, 소위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들은 다른 것 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많이 사주었기 때문에 베스트 셀러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사겠금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어그로를 끌어 사람들이 책을 구입하게 할 수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책이 인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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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의 핵심은 '그래서 추상적인 개념들이 절대적인 것이냐?'입니다.
사랑도 건강도 결국에는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기대치도 항상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영원히 사랑이든 건강이든 추구하려면, '우리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노력을 돕거나 장애물을 제거해 주는 것이 바로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건강, 사랑, 행복 등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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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건강하고 싶은가? 왜 사랑을 하는가?를 물어보면 결국 행복하고 싶어서 라는 대답에 도달하게 되니까요.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존대하기 위해서는 다른 목적에 종속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왜 행복하고 싶은가? 에 대한 대답은 행복하고 싶기 때문이고 돈이라는 수단은 궁극적인 목적이 되지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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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추상적이고 일시적인 목표, 목적일 뿐이죠.
단지 사람들이 그 목표와 목적을 자신의 신념으로서 억지로 유지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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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인간 본연의 목표가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데에서는 이견이 없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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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궁극적인 것은 과학밖에 없으며, 물리학과 경제학 법칙을 철저하게 따르는 것은 돈밖에 없으니 돈이야 말로 궁극적인 수단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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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건 도덕의 결과겠지요. 도덕의 발생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네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는 이기심에 고무된 인간상을 국가의 등장으로 제압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맨더빌의 경우는 이성이라는 아부적인 단어 때문에 인간들 스스로가 도덕적 규율에 얽매이게 되죠.아담 스미스는 공감을 통해 공동체 내에서 공통적으로 공감되는 행위를 도덕으로 규정하구요. 그 발생 과정이 어떻든 도덕은 어떻게든 발생하고 글쓴이님이 말한 것 같은 비도덕적 행복 추구를 억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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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이고 형태가 불확실한 것에 저희가 얽메이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배신하지 않거든요. 소크라테스라 할 지언정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증명을 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가 궁극적인 무엇인가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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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예는 이성이 가치가 있는가 물질적 풍요가 가치가 있는가의 싸움인데 둘 모두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그걸로 옳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의 반대 개념으로 추상적인 것을 계속 지적하시는데..절대의 반대는 상대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개념이라도 절대적인 목적으로 충분히 성립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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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물건이랑 뭐가 다르지? 왜 달라야 하지? 존엄성 따위는 인간이 스스로를 단정하는 기준일 뿐 과학 법칙이 그래서 존중해준대? 결국 아무리 이성을 잘 봐줘도 본성을 확장한 것에 불구하지.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할 수 없지. 언제든 자신의 목표가 바뀔때 마다 모아둔 돈과 지식이 그것을 성취하는데 도움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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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물건이랑 뭐가 다르지? 왜 달라야 하지? 존엄성 따위는 인간이 스스로를 단정하는 기준일 뿐 과학 법칙이 그래서 존중해준대? 결국 아무리 이성을 잘 봐줘도 본성을 확장한 것에 불구하지.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할 수 없지. 언제든 자신의 목표가 바뀔때 마다 모아둔 돈과 지식이 그것을 성취하는데 도움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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