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별통보를 받고나서 지금까지 온 몸이 납덩이라도 된 것처럼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갑갑하기만 한 마음에 글 씁니다.
몇 개월 전, 부끄럽지만 이십대 중반까지 모쏠이었습니다.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잘 없었지만 이리저리 노력해서 소개팅 자리도 만들어보고 도서관에서 번호도 물어보고 했는데 사귀는데 성공한 적이 없었어요. 정말 잘 되는 것 같다가도 일을 그르친 적도 있구요. 계속되는 실패에 '나는 여자한테 어필하기 힘든 타입인가보다'하고 자존감이 계속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기회로 만난 여자분이 있었어요. 연하의 학생이었는데 서로 호감이 있었는지 종일 카톡을 하면서 몇 번 만나고 사귀는데 성공했습니다. 서로 너무 좋아서 이틀 또는 삼일에 한 번씩 만났네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준다는 이 믿기 어려운 현실에 어리둥절 하면서도 세상에 이런 극한의 행복감이 있구나 싶었네요.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공유했어요(커플 초창기 대부분 이렇겠지만요). 듣는 사람들마다 '개념녀'라고 칭찬할 만한 똑 부러지는 행동들을 보여줘서 너무너무 좋았구요. 서로 애정표현도 많이 했습니다. 썸단계에선 좋은티를 너무 내면 상대한테 부담 줄 수도 있으니 선을 지켜야 하지만, 그런거 없이 좋다고 표현하면 할수록 득이되는 이 상황이 너무너무 좋았네요.
지난 토요일까지도 잘 만났어요. 저는 타지역으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면서 화요일에 이곳으로 옮겼어요. 가기 전 월요일 밤에 너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알겠다더니, 갑자기 일이 생겼다면서 돌연 약속을 취소하는 겁니다. 섭섭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카톡 답장이 두세 시간에 하나씩 뜸하게 오더니, 어제 이별통보를 하는겁니다. 카톡으로 얘기를 했는데, 예의없는거 알지만 차마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말을 할 용기가 없다면서요. 이제 서로 바빠져서 만나기도 어려워질거고(그녀는 곧 수험생활에 들어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요새 연락하는게 귀찮아졌다면서... 요즘들어 생각해보니 외로워서 너무 쉽게 사귄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어요. 그래도 저를 만나는 매 순간순간은 진심이었다며, 일방적으로 이렇게 얘기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붙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듣한 그녀의 태도에 무기력함을 느끼다가, 정말 어렵사리 이별의 말을 주고받으며 정리했어요.
그 이후로 너무너무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있고만 싶네요. 연애를 하고 헤어져본 많은 사람들은 이 쓰라림을 도대체 어떻게 견뎠냐 모르겠습니다. 같이 거닐었던 장소들을 지나갈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지금 당장 그녀가 제 옆에 없으면 사람다운 생활이 안될 것 같습니다.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가 않아서 일찍 퇴근했는데, 기숙사 방에 혼자 앉아있으니 기분은 끝도없이 가라앉기만 합니다. 거듭된 실패 끝에 얻은 사랑이었는데 이렇게 끝이 나네요. 오늘밤 잠이 오기는 할런지... 이런 사람을 또 어디서 만나죠
쓰다보니 너무 길었네요. 찡찡대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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